James Brown Show

주의: 공연 감상이 아닙니다.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James Brown의 내한 공연이 정말 성황리에 끝났다. 내가 찾았던 외국 아티스트의 공연 대부분이 록/메탈 혹은 야시꾸리 재즈 계열이었기 때문이었을까? 2층까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공연은 처음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Ozzy Osbourne 내한 공연 때도 두 줄 건너(한 줄에 20좌석) 한팀(2~4명) 가량 앉았었는데.

여튼 저튼 제임스 브라운은 제임스 브라운이었다. 분명 늙었고(1933년 생), '섹스 머쉰'의 힘 - 아예 그 유명한 엉덩이 춤은 없었고, 간간히 현란만점 스텝만 보여줬다 - 도 예전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대를 장악했고, 관객을 움켜쥐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하나, 둘 일어나서 몸을 흔들며 공연을 즐기던 사람들은 'It`s Man`s Man`s World'가 끝난 뒤, 터져나온 'I Got You(I Feel Good)'에 이르러 전원이 마치 용수철 튕기듯 일어서야만 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절대 앉을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날 때 까지라고 해봐야 'Get Up(I Feel Like) Sexmachine' 한 곡이 더 연주되었을 뿐이지만.... 마치 전인권의 공연처럼 모든 곡은 늘릴대로 늘려서 기본이 10분씩은 이어졌으므로 (특히 길었던 마지막 두 곡을 감안한다면) 공연 막바지 30분 가량은 단 한명의 관객도 예외없이 일어서서 몸을 흔들었단 얘기다. (모르겠다 다른 데서는 어땠는지, 그러나 2층 30구역의 5열 앞으로는 모두 일어서 있었다. ㅋㅋㅋㅋ)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제임스 브라운의 쑈는 천박하다. 아주 노골적이다. 같은 흑인인 Miles Davis도 '광대가 되버린 흑인이라고' 욕을 했을만큼....... 그러나 그것이 195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흑인 음악이 전세계 대중음악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되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말이다.

70이 넘은 할배가 반라의 무희들을 옆에 대동하고 흔들어대는 그 모습. 벌거 벗은 무희들은 가식적인 웃음을 파는 것일까? 여성의 성 상품화에 앞장 서는 마초들의 개수작인가? 흰 기지 바지(!)에 빨간 양복으로 통일된 악단의 비브라토 잔뜩 들어간 연주는 느낌도 감정도 없는 지루한 반복일까? 이 모든 것이 단지 천박한 자본주의의 구역질나는 모습일 뿐이었을까? 나도 글로 쓰고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200%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글이 아닌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제임스 브라운의 공연을 보노라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아니, 땀 흘리는 그들의 공연 모습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진정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 즐기는 기운이 객석에도 넘실거려서 함께 즐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틴팬앨리(Tin Pan Alley)나 유러피안 클래식에서 느낄 수 없는 원초적인 즐거움이다. 외피는 미국산, 자본주의산, 싸구려 광대로 둘러쌓여 있지만 알맹이는 순도 100%의 솔직하고 까발려진 즐거움인 것이다. 그 즐거움은 제임스 브라운이 공연 중에 떠들었던 말과 같이 소울의 정신이기도 하다. 즐거움이되, 아무 생각없이 그저 침 질질 흘리는 유희가 아니라 몸을 움직여서 얻어지는 노동의 즐거움, 섹스의 즐거움, 살아있기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제임스 브라운이 꼭 요렇게 말했다는 건 아님)이다.

그러한 날 것의 즐거움이 살아있기에 제임스 브라운의 공연은 사람들을 모두 일어서게 만들고 흔들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날 것의 힘이 흑인 동네를 넘어, 미국 전체를 넘어, 전 세계 음악시장을 휩쓸 수 있었던 것이리라.

미국산이었기 때문에 유리한 고지에서 세계로 나설 수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미국산이기에 동시적으로 전세계 어디나 퍼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로 나아가기 용이했다고 해서 그 음악의 힘 마저 부인할 수 있을까? 미국산이고, 미국을 노래하는데, 그 안에는 미국이라는 시스템이 짓눌린 흑인의 감정이 노래 속에서 실제보다 더 커져서 분출되어 있다.

예전에 일본의 뛰어난 훵크 밴드 오사카 모노레일(Osaka Monaurail)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저 음악만 듣고 이런식의 판정을 했다. '제임스 브라운과 정말 흡사하지만, 제임스 브라운이 뿜어내는 블루스의 정서가 부족해 보인다' 제임스 브라운의 공연을 막상 보고나니, 그것은 블루스의 감정이라기보다, 제임스 브라운=흑인의 존재감이었다. (그가 블루스를 부르며 불러들인 여성 코러스 역시 흑인, 기타리스트 역시 그의 아들-당근 흑인이었다) 이러한 존재감은 레이 찰스의 음악이 풍기는 그것(그의 경력은 블루스 피아니스트/편곡자로 시작된다)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도 일본의 밴드는 (한국의 밴드도 마찬가지겠지) 이 정서를 가질 수 없었다. 혹시 일본에서 사는 조총련 아이들이 훵크 음악에 빠져 밴드를 결성한다면 비슷한 정서-느낌이 나올런지도.....

미국 음악이고, 일반적인 미국애들이 즐기면서도, 대다수에게 무시되는 인간들의 음악. 랩을 따라하면서도 힙합 재벌은 은근히 멸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

그 묘한 정서와 느낌으로 멈출 수 없는 댄스 비트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그 모든 걸 '미국'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팔아먹는다.... 미국 사회의 흑인들에 대한 차별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인 견해를피력하는 제임스 브라운이 미국을 욕하지 않고, 'Livin` In America'에서 미국을 칭송하고있지 않은가.



그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천박한 그 음악은 그래서 심장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해서 춤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디스코와 훵크-소울은 그래서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은 몸을 흔들다가도 어느새 허걱! 싶게 서늘하다.

Posted by 헤비죠

2006/02/26 22:19 2006/02/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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