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보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녁 먹고 마신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님 밤에 내 방에 수다 떨러왔던 단편영화 만드는 형과 또 커피를 마셔서 그런 것인지.
내일이 개강인데, 28일까지 마감인 원고도 있는데, 암 것도 안 하면서 잠도 오지 않는다.
Jack Johnson의 따스한 음악을 듣고 있지만 자꾸만 음악 밖을 상상한다.
대학이라는 공간에 있다보면 남들과 조금 다른 통과의례를 거친다. 나에게는 6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입사 의례가 있다.
개강이라는 이름의 입사 의식이다. 늘 새로운 시작은 설레이면서 떨리는 법.
행당캠퍼스에서의 첫 강의, 문화인류학과가 아닌 학과의 수업을 듣기(학부 때를 제외하곤 첨이다). 무엇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내일 저녁엔 데프콘 인터뷰도 있구나. 사실 전혀 바쁘지 않은데, 맘은 늘 바쁘다.
내 맘이 바쁘게 느껴지는 건, 틀에 박힌 어떤 미래에 대한 그림이 나에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대중음악과 이 사회 사이에서 고민하고 의미를 찾고 다시 그 의미를 재생산하는 글쟁이.
글쟁이가 되겠다는 꿈, 그것 하나만 분명하다. 아카데미아에 있다고 해서 대단한 무엇이 되려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되기도 불가능에 가까운 구조아니던가.
그래, 미래가 선명치 않기에 나는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걸었던 길을 다시 걷지 않겠다.
언제나 새로운 길을 걷겠다.
그 길이 어떤 길이건,
예전에 한 음악하는 선배 아버지 상을 당했다고 해서 새벽까지 자리를 지킨적이 있었다.
난 너무도 존경하는 그 선배를 보면서 난 늘 생각했었다.
저런 선배도 이상을 향해서 저렇게 척박한 삶을 웃으며 견디는데, 난 뭐냐고.
근데, 그 형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비죠야, 형은 널 보면 늘 이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거 같아서 보기 좋다."
그날 내가 술을 조금 더 마셨더라면 울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또 내 길을 걸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뻔한 삶을 뻔하게 살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Posted by 헤비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