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 음악이 담긴 씨디를 몇 장 열심히 들었다. 음악이 좋아서는 아니었고, 북한 대중음악을 분석하는 레포트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였다. 글 쓸 '꺼리'를 찾아야 하겠기에 꽤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처음 들으면서 느껴졌던 것들을 머리 속에 정리하고 북한의 문화에 대해 준비 중인 다른 선배들의 얘기를 듣다가 살짝 놀라고 말았다. '북한 문화의 유치함'내지는 '강렬한 통속성'에 다들 질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석/박사 과정 뿐 아니라 북한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교수님네들의 글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그 '참을 수 없는 유치함'은 어디서 나왔던 것이며, 난 왜 그런 걸 별로 느끼지 못했을까?
북한 대중음악은 세대 / 청자별 구분을 크게 갖지 않는 음악이라는 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지가 베르또프는 1929년 사회주의 영화와 라디오(발성 영화를 포함)에 대해 ‘전세계 노동자들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동시에 듣는 것으로도 서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임무’를 제시했다. 요 말을 북한 버전으로 살짝 틀어보면 북한의 대중음악은 ‘전 인민들을 서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임무’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매우 소량의 자료에 기초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접한 자료 중 세대나 청자의 구분이 지워지는 음악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간간히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른 감각이 살짝 살짝 드러나긴 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개성이 강조된) 요소가 곡의 전면으로 부상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는 어느 한 요소를 통해 어느 계층의 청자에게만 어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편곡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여튼 이러한 모든 세대가 즐기는 음악을 구현하고자 북에서 내놓은 대중음악의 방식이 통속성과 적절한 세련됨의 조화일 것이다. 세련됨에 대한 기준은 당연히 남쪽과 다를 것이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통속성과 세련됨을 적절히 섞어서 대중가요가 만들어 진다는 것에 있어서 남북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러한 몰 개성 / 동일 음악을 모든 세대에게 적용하려는 북쪽의 시도에 놀란다. 세대나 청자의 특성에 맞게 세분화된 장치(리듬, 장식음, 패션,...)라. 글쎄, 난 한국 가요계에는 그렇게 세분화된 무엇이 있나 모르겠다. 음악을 리듬과 악기, 그리고 가창 방식으로 나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가요, 특히 주류 가요의 작곡만 본다면 남쪽이라고 뭐 별 차이 있는지 궁금하다. 발라드 작곡의 황제라 불리는 모씨도 어떤 곡의 테마를 연주하며 "서양 애들이라면 이렇게 쳤을 꺼에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쳐야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해요. 우리끼리는 이런 걸 '뽕끼'라고 해요."라며 트로트의 음계를 자랑스럽게 내놓지 않던가.
그ㅡ래.... 사실 음악에 있어서 편곡은 정말 중요하다. 정말 단순한 멜로디 하나로 작곡된 노래도 좋은 편곡자를 만나면 완전히 새로운 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틀즈의 노래들. 수자폰을 비롯한 관악기의 유머러스한 소리가 덮힌 중반기의 멋진 곡들. 이런 편곡 다 빼고 멜로디만 생각해봐라. 얼마나 단조로운가. 곡은 얼마나 지루하며.
그/러/나 편곡은 곡을 꾸며주는 것일 뿐이다. 곡의 뼈대는 우선 작곡에 있다. 발라드, 힙합, 테크노, 록, 등등 신세대 음악이라 불렸던 모든 음악들 다 가져다 붙여보자. 주류 방송을 통해 떴던 노래 중에 (예외가 하나도 없을 순 없는 거, 다들 알꺼고) 트로트와 다른 음계로 만든 게 몇 곡이나 있을꼬? 한국 가요는 지난 30여년간 작곡에서 뭐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단지 이를 꾸며주는 편곡이 시대를 반영하며 바뀌었을 뿐. 트로트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 편곡이 잘못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늘 같은 나물에 같은 밥을 새로운 밥상 코디네이터가 차려준다고 그게 새로운 밥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거다. 너무나 멋진 코디네이터와 코디네이터를 칭송해주는 홍보찌라시들 덕분에 같은 밥이 물 건너온 새로운 요리인 양 얘기해 왔다는 걸,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마치 우리의 귀가 새로움에 엄청 개방적인 양 느끼게 만들어 왔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따지고 보면 뼈대는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음악을 겉 모양새가 우리 꺼와 다르다고 유치하게 느낀단다. 과연 그렇게 절절 맬 만큼 유치한 음악인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수 십년 똑같은 음악에 옷만 쬐끔씩 다르게 입혀오면서 세대 차이를 만든 거나, 수 십년 여전히 똑같은 음악에 세대 차이 없게 옷을 입혀온 것이나 내 귀엔 그저 비슷한 음악의 조금 다른 모습으로만 느껴진다. 그것은 뼈대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될 뿐이다.
사실, 난 키보이스의 음악이나 신중현의 음악이 전혀 다른 깊이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때의 음악이 지금의 그것보다 뭐 하나 별로 뒤쳐지게 들리지도 않는다. 시대와 녹음 기술의 차이만 보일 뿐 알맹이는 늘 같은 것처럼 들린다. 음.... 아무래도 난 유치함에 대한 감을 잃어버린 사람인 거 같다. 세련됨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 아무래도 나는 요즘, 음악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
Posted by 헤비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