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이 다가왔다. 늘 그렇듯, 언론은 15일까지 열심히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역사가 어쩌구를 운운하다가 15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 것이다. 나는 민족을 운운하면서 이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아주 순수한 인권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기본적인 인권이 유린 당하고, 죽은 다음에는 그 영혼까지 이용당하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싶다.

현재까지도 조선에서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노동자의 수는 확실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1945년 일본에 머물던 조선인의 숫자가 140만명을 상회하는 숫자였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강제징용 노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은 하나같이 '못 먹고, 못 자고, 못 입고, 맞아가며' 노동했음을 지적한다.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일했던 공사장 주변의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보통 수백에서 수천 명씩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죽어서 마을 묘지 주변이나 야산에 묻혔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공식 기록(그나마 남아 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은 언제나 백명 안팎의 사망 기록만이 남아있다. 일본측 기록에 사망 사실이 남아있는 경우라도 이들의 사망 사실이 가족들에게 통보되거나 유해가 전달된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만의 조선인, 아니 수백만의 조선인, 대만인, 중국인 아이누인, 오키나와인 강제징용 희생자들은 지금도 일본땅 어딘가에 돌보는 이 없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몇 몇 발굴 사례에 의하면 노동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묻힌 것이 아니라 작은 구덩이를 파고 쪼그린 자세로 눌러서 매장된 모습을 띄고 있다.

죽은 사실도 기록으로 남지 않았고, 죽은 시신도 버려지듯 묻힌 아시아의 강제징용 노동자들. 처참하게 빼았긴 인권과 노동권. 그리고 죽은 후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노동자 뿐 아니라 군대에 끌려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들은 어쩌면 더욱 악랄한 사후 대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파악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조선인의 명패는 2100여명, 대만인은 2800여명. 이 밖에도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서 자신의 조상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일본인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원치않는 전쟁에 끌려가 죽은 이들이 죽어서 조차 일본을 지키는 전쟁의 신이 되어 자신의 영혼과 이름을 계속 제국주의의 야심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합사 취하 소송이 지난 2006년 5월 패함에 따라 이들을 구제할 방법은 국제 사회에 이를 알리고 국제적 규모의 항의와 압박을 하는 수 밖에 없다. (UN제소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과연 6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기는 커녕, 시간의 무게에 덮혀버리고 잊혀져가는 이 인권 유린의 현장을 우리는 매듭짖지 않고 그냥 넘길 수 있을 것인가?

늦었다. 정말 많이 늦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아시아의 양심 세력이, 아니 전세계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지금 일본의 우경화를 잡지 않으면, 아시아의  이스라엘이 되어 주변의 인민들을 학살해도 미국의 비호아래 세계가 제대로 목소리 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도쿄에서는 '어둠의 야스쿠니 신사에 평화의 촛불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대만, 일본, 오키나와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갖는다. 물리적 충돌을 피하면서 캠페인과 촛불집회, 그리고 재일 조선, 중국인들을 돕기 위한 바자회,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우리는 폭력에 대항해 같은 폭력을 쓰지 않으려 한다. 폭력의 결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참가자들은 홋카이도로 이동하여 17일부터 25일까지 아사지노에 위치한 구 육군비행장 건설 현장에서 죽어간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유해를 발굴한다. 아사지노 주변 사르후츠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소 300, 최대 400명 이상의 조선인, 중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나리타 연못 주변에 위치했던 공동묘지 주변에 묻혀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활주로 공사를 위해 골짜기를 메우는 과정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은 그 자리에 흙과 함께 매몰했다는 증언도 들린다. 이미 지난 2005년 10월 충북대 박선주 교수(형질 인류학)의 현장 답사 때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성인의 유골을 발굴 한 바 있다. (이 유골의 두개골에는 비 정상적인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어서 죽음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번 발굴이 갖는 의의는 단순히 묻혀진 과거를 캐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발굴에 참여하는 한국, 대만, 재인 조선인 대학생 뿐 아니라 가장 큰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발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익 집단의 마을에 대한 위협도 있었다. 따라서 처음엔 발굴단을 위한 숙소를 거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시를 기억하는 노인들과 "우리 마을에 외국인들이 버려지듯 묻혀있는데, 우리가 웃으며 살 수 있겠는가"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청년회가 나섰다. 즉, 새로운 한일, 아니 아시아의 공동체 모색을 위한 단초가 시작된 것이다.

거창한 결과를 원치 않는다. 그저 젊은이들이 국적이라는 틀지움에서 벗어나 인권과 평화라는 하나의 화두 앞에서 하나되어 땀 흘리고 울고 웃으며 미래를 열어갈 틈 새를 벌리길 바란다.


올 해의 8월은 15일이 지나도 아니, 역사의 매듭이 확실하게 지어질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에 60년 전 잃어버린 우리의 작은 조각들을 위한 공간이 계속 남아있기를........




관련 사이트

야스쿠니 반대 공동행동  http://www.anti-yasukuni.org
  -> 야스쿠니 반대 공동행동과 관련된 자료, 진행사항, 보도 기사, 등을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공동워크샵 http://blog.daum.net/peacetown
  -> 1997년 1회 동아시아 공동워크샵 영상물, 강제징용 관련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13일 도쿄 촛불집회부터 삿포로를 거쳐 아사지노 발굴까지 현장에서 동영상과 생생한 리포트를 제공할 예정이다.
 

Posted by 헤비죠

2006/08/09 18:14 2006/08/0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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