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토요일 4시간 수업이 끝나면 나는 음악실로 향했다. 합창부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합창부 내부 역시 선배와 후배의 위계 관계로 구성된 일종의 군대 문화적 분위기였지만, 합창부 지도 교사가 학생들이 자율로 운영하는 토요일 연습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그리고 가끔 학생들끼지 모여있음에 대해 교감이 시비 거는 것에 대해서도 막아주기도 했다)에 강제되는 연습이 아니었음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참여하곤 했다. 선-후배의 권위적인 위계질서에도 불구하고 학교 내부에서 교사들의 감시와 떨어진 공간을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해방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이 공간을 학생 자치지역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선배들부터 음악실 앞의 화장실에서는 담배를 안피운다거나 3학년 선배도 담배를 피운 후(음악실에서 선배가 목에 힘주는 원천 중 하나였다) 꽁초를 화장실 바닥에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고 나가는 모험(!)도 감행했다. 언제나 합창부가 토요일 오후에 학생들끼리 모여있다는 사실에 대해 딴지 걸고 싶어 안달이 난 학생부 선생들에게 어떻게해서건 꼬투리 ‘꺼리’를 제공하지 않기 위한 자발적인 행동들이었다.
합창부 생활도 은근히 짜증이 났다. 선-후배의 권위가 너무나 지겨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강한 양성반응을 보이던 아이도 있지만 나는 우리만의 공간에서 선생과 똑같은 위치에 서려는 선배들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연례적인 선배의 구타도 내가 3학년(구타를 결정하고 집행하는)이 되었을 때, 일부러 없애려 노력했던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구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몇몇 아이들의 강력한 희망으로 완전히 구타를 없애진 못했지만 최소한 학년 대표와 지휘자의 세 명으로 줄어든 것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위마저 버릴 수 있는 곳은 바로 합주실과 밴드였다. 압구정동, 성수동, 종로 등에 위치한 합주실에서는 프로 밴드가 연습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합주실을 드나드는 음악 선배들과 평등한 위치에서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정말 기타를 잘 치는 기타리스트는 실력 때문에 존경 받았고, 실력 없는 뮤지션은 나이가 많아도 그저 그런 위치였다. 위계질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뭘 해도 나이만 많으면 마구 짓누를 수 있던 고등학교와 달리 합주실 문화는 나에게 너무나 신선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자주 연습했던 압구정동의 한 합주실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미모의 드러머 누나의 존재는 팔팔하던 아이들에게 음악 선배 이외에도 여러 대상(?)이 되주었다. 헤비메탈은 그렇게 나의 고교 생활의 힘이었다. 실력위주의 위계 문화조차도 내가 고교를 졸업할 즈음 불기 시작한 그런지 붐(그때 그런지를 연주하던 형, 친구들이 군대 갔다오니 인디판에서 많이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 불면서 연주력에 대한 반감이 생기며 점점 사라져갔다.
합주실에서 고교를 보낸 친구들 중에 지금까지 음악의 끈을 놓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나름대로 동네에서 드럼 제일 잘 친다는 얘기 듣던 친구 녀석의 근황을 들어보니 뒤늦게 미대에 들어갔다가 디자인을 한단다. 그 친구와 함께 밴드를 하며 강남을 주름잡던 기타리스트 녀석은 얼마전 너무 좋게 들었던 밴드 W의 멤버가 되었고. 하지만 W에서 기타와 노래하는 녀석을 제외하고 계속 음악 한다는 친구는 참 찾기 어렵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밴드를 하는 친구들의 소식은 끊임없이 들린다. 다들 직장은 먹고 살려고 다니고 진짜 자기는 밴드 합주에서 찾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다들 백수는 면하고 있는 모양이다. 맨날 싸우다가 정학 먹던가 아예 학교 안나오던 녀석을 우연히 길가다 만났는데, 무슨 연예 기획사 팀장이란다. 그 친구가 연예인의 창조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방송국 PD들을 찾아 다니면서 접대하는 데 열을 올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와 친구들은 모두 피해자였다. 학교는 그 공간 안에서 범생이로 얌전히 있다가 밴드 연습에서 마구 자신을 발산해야 하던가, 혹은 작은 지점이라도 학교 안에 학생 자치가 가능한 곳에 몰려서 권위적인 선배라도 받아들여야 하던가, 그것도 안되면 선생에게 개기다가 학교 짤리던가 직업 교육원으로 보내져야 했다. 소위 말 잘듣고 공부도 잘하는 진짜 모범생과 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의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친구들도 피해자였던 것은 그다지 차이가 없을 듯 싶다.
더욱 무서운 것은 우리에게 내면화된 교육의 목적이다. 개기던 녀석이 주류 도매업계에 들어가서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기타 치면서 학교에서 말 잘 듣던 친구는 보수 언론의 기자가 되어 보수적 시각을 재생산하는 기사를 쓴다. 대학도 때려치고 일찍 바텐더라는 직업에 나섰던 노래하던 친구는 군대도 가지 않았으면서 사수-부사수 어쩌구 하면서 열심히 애들을 ‘갈군다’. 한국의 교육이 아이들의 다양성과 공간에 대한 자치 능력을 키워주지 않는 이상, 저항과 반항의 몸짓으로 만든 자치적인 모습들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학교와 사회의 권위주의적 틀을 가져다 쓸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공연을 위해 소극장과 계약을 하고 대관료를 마련(나의 고교시절엔 대한민국에 공연을 할 수 있는 클럽이란 것이 없었다)하기 위해 표를 찍어서 팔다가 걸리면 정학이었던 학교 교육 밑에서 모든 종류의 ‘개기던’ 아이들도 별 수 없이 권위적이고 획일적이며 ‘발전 지상주의’의 태도를 내면화 할 수 밖에 없어진 것이다.
발전, 발전, 발전, ..... 자본주의의 발전. 언제까지 어떤 식으로 발전을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머리 속에 발전이란 그림은 무엇인가? 전세계가 모두 미국인처럼 종이를 쓰려면 지구의 나무를 모두 잘라 종이를 만들어도 택도 없이 모자란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전세계가 그렇게 되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우리나라는 그렇게 되야 한다’는 얘기로 응수한다. 우리는 지구의 일원이 아닌가? 이러한 배타적인 사고 방식의 뿌리에 나는 우리의 교육이 꾸준히 재생산해 온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일방주의적 가치관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한혜정 선생의 지적대로 그러한 교육이 가치 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부인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교육을 통해 아주 일방적인 사고방식으로 밀어붙인 황당한 경제발전 덕분에 나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자랐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살아왔으니까. 그러나 그 한계는 앞서 말한 대로 거부하는 몸짓조차 한국사회, 시스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모습으로 처참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요즘 가장 큰 관심은 인디 음악의 전 지구적 단위의 공동체 형성이다. 아마도 한국 인디 음악계에서 펑크와 로우파이 애들이 이런 시도에 있어서 가장 성공적이라 생각되는데, 이러한 공동체에 몸을 담근 친구들을 만나보면 이들이 상당히 버거워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많이 만나게 되는 일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떠오른다거나 혹은 아예 한국에서 사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세계인이란 큰 무엇을 만들어 내길 바라지만 현재로서 그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한국 밴드는 만나보지 못했다. 다만 외국 친구들과 만나고 음악적 공감을 갖고 잘되면 외국에서 음반을 내는 것에 대한 꿈만을 확인할 뿐. 사실 이 사고방식은 쌍팔년도 메탈하던 엉아들에게서도 자주 듣던 얘기다. 끙..... 여튼, 우연히 뒷풀이자리에 합석할 수 있던 어느 일본 밴드의 멤버에게 ‘나는 하드코어 정신으로 살아가는 세계인’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물론 그 말을 번역해준 한국 친구가 잘못 번역한 것일 수도 있지만...... 뒷통수 한 대 정말 '지대로' 얻어터진 느낌이었다.
하긴 그런 일본 젊은애들을 보면서 일본의 보수 우익의 노인네들이 더 신경질적으로 이런 저런 사건을 만들고 공론화시켜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좀 더 자유로운 사고, 저항의 몸짓 안에서는 수평적인 관계 맺기가 가능한 인간이 되었으면 싶다. 교육이 있어야 할 위치는 바로 거기다. 교육 노동자만이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한국 사회-문화가 바로 교육이다. 그리고 교육 노동자는 다시 그 문화를 제/대/로 재생산 해줘야 한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다음일 수 없다.
Posted by 헤비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