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1993, 프랑스/미국, Isabel/Evidence)
블루스 레이블 Evidence는 최고의 음반이 나오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난 이상하게 이 레이블의 음반들이 심하게 끌린다. 적당히 늘어지는(나쁘게 말하면 거칠고 조악한) 녹음과 그런 스튜디오에서 놀면서 녹음한 듯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Evidence레이블 음반치고 평론가들에게 좋은 점수 받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Kid Ramos"형이나 좀 인정받았달까, "Koko Taylor"누님(어느새 칠순을 훌쩍 넘기신!)이나 "Pinetop Perkins"형님의 음반도 Evidence에서 발매한 경우는 평년작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근데도 난 Evidence가 보이면 산다.
이번에 구한 블루스 보컬리스트 "Andrew 'Big Voice' Odom"형님(1992년 운전 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교통사고를 내고 돌아가셨단다)의 이 음반도 마찬가지다. 구수-담백 기타리스트 "Magic Slim(지금 몸매는 헤비하시다)" 형님까정 합세해서 만들었지만, 이 음반은 연주나 녹음 모두 딱! 중간 수준이다. 그러나 그래서 난 더 좋다. 너무 강렬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았기에 매일밤 작은 클럽 무대에서 노래하며 살아가는 블루스 뮤지션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실 이 음반은 1982년에 프랑스에서 녹음, 발매한 것을 1993년 Evidence에서 미국에 재발매-일종의 추모 음반-한 것이다. 블루스와 재즈 뮤지션 중 프랑스(와 유럽)로 건너간 사람들이 참 많다. 음악 아무리 잘해도 흑인이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백인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다가 우연히 목돈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유럽 연주 여행 갔는데, 여기서 만난 유럽팬들이 자신들을 예술가로 (미국서는 싸구려 악사 취급 받았는데) 인정하는 데다가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데 뿅 가서 눌러 앉은 경우들이다. 이런 얘기가 영화 『`round Midnight』보면 잘 나와있다. 블루스계에도 이런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감동의 명반 한 장 녹음하고 돌아가셨던 "Luther Allison" 음반을 진짜 감동적으로 들었던 기억도 있다.
여튼, AMG에도 그다지 자료가 없는 뮤지션인 것으로 볼 때, "Big Voice"는 상당 기간 프랑스에 머물다가 돌아온 듯(사망은 미시건의 고속도로였다) 하다. 그래도 "Little Milton"형님(아! 그도 지난해 가셨구나)과 "Magic Slim", "Lucky Peterson"형까지 시카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쟁쟁한 블루스 친구들 홀라당 유럽까지 불러서 음반 만드신 거 보면, 나름대로 파리의 삶이 꽤 괜찮았나보다.
따뜻 따뜻 구수 구수해서 듣다보면 왠지 맘이 흐뭇해지는 음반이다. 싸구려지만 인간 느낌나는 음악 너무 좋아. 블루스 초심자라면 울림이 좀 많은 음질이 너무 낯설라나? 여튼 자작곡인 「Feel So Good」에서 영원한 블루스의 명곡 「Reconsider Baby」까지 8곡이지만 상당히 빼곡하게 들어찬 느낌을 주는 음반이다. 5분을 넘기는 곡들이 반이 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곡, 한 곡 오랫만에 한 자리에 모인 옛 친구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떠들어 대며 즐겁게 잼하며 노는 느낌이 음반 가득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이 음반을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대의 오후는 편안하신가요?
P.S.
이 양반의 초기 별명이 Little B.B.였단다. B.B.King만큼 노래 잘한다고. 그러다가 B.B.가 너무 똑 같아서 B.V.(Big Voice)로 바꿨다나 뭐라나.... 이름에 얽힌 얘기도 어쩌면 이렇게 음반 분위기 만큼이나 구수 일품인지.
P.S. 2
이상하게 블루스 뮤지션들은 다 형님같이 느껴질까? 울 할아버지 뻘인 양반들인데도, 친근하고 구수해서 그런가? 신기하다.
Posted by 헤비죠

